철학적 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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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편집]
2. '좀비'? [편집]
창 밖을 보며 바깥 나무의 싱그러운 푸른 느낌을 경험하고, 초콜릿 바를 씹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오른쪽 어깨에서 욱신거리는 통증이 느껴진다고 상상해보자. 내 좀비 쌍둥이는 어떨까? 걔는 나와 물리적으로 동일하고 […] 기능적으로 동일하며 […] 심리적으로 동일한데다가 […] 기능적 의미에선 “의식적”이기까지 하다. 잠에서 깰 수 있고, 내적 상태의 내용을 보고하며, 여러 장소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는 그런 기능 발휘가 진정한 의식적 경험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현상적 느낌이라는게 없다. 좀비가 되는 느낌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1][2]데이비드 차머스, 『의식적 마음(The Conscious Mind)』
차머스 본인이 명시적으로 밝히듯 철학적 좀비는 헐리우드 영화에서 흔히 연출되는 "좀비"와는 다르다. 왜냐면 철학적 좀비는 몸이 썩어들어가지도 않고, 말을 못하지도 않으며, (보통 사람이 그렇다는 가정 하에서) 식인을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의상 철학적 좀비는 보통 사람과 원자 단위, 분자 단위로 동일하기에 물리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현대 분자생물학 및 신경과학을 신뢰하는 한, 이처럼 좀비와 사람이 물리적으로 구별불가능하다면 좀비와 사람은 인지, 행동 등에서도 구별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좀비는 사람처럼 똑같이 먹고 마시며, 글을 읽고 말을 하고, 울고 웃으며, 찌르면 피가 나는 생물이다.
다만 정의상 좀비는 사람과 달리 감각질을 결여한다. 즉 "날 것인 느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좀비가 나뭇잎을 본다고 해보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뭇잎을 볼 때 가시광선은 좀비의 망막에 있는 시세포를 거쳐 전기 신호로 전환되고, 이는 시신경을 통해 대뇌 후두엽 시각피질을 거쳐 뭇 두뇌 영역에서 처리된다. 이를 바탕으로 좀비는 "나뭇잎이 보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봄이 왔구나'라고 추론을 할 수도 있으며, 나뭇잎을 집으려 손가락을 뻗을 수도 있다.
다만 사람과 달리 좀비는 "초록색"이라는 바로 그 느낌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물리적, 생리적, 행태적으로 사람과 모두 같지만 바로 그 주관적인 경험만큼만은 불가능한 것이다.
좀비 논증의 옹호자들은 결코 좀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현실세계에서 그런게 있다고 볼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다만 관건은 그런 좀비가 존재하는게 가능하냐는 점에 있다.
오히려 정의상 철학적 좀비는 보통 사람과 원자 단위, 분자 단위로 동일하기에 물리적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현대 분자생물학 및 신경과학을 신뢰하는 한, 이처럼 좀비와 사람이 물리적으로 구별불가능하다면 좀비와 사람은 인지, 행동 등에서도 구별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좀비는 사람처럼 똑같이 먹고 마시며, 글을 읽고 말을 하고, 울고 웃으며, 찌르면 피가 나는 생물이다.
다만 정의상 좀비는 사람과 달리 감각질을 결여한다. 즉 "날 것인 느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이를테면 좀비가 나뭇잎을 본다고 해보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뭇잎을 볼 때 가시광선은 좀비의 망막에 있는 시세포를 거쳐 전기 신호로 전환되고, 이는 시신경을 통해 대뇌 후두엽 시각피질을 거쳐 뭇 두뇌 영역에서 처리된다. 이를 바탕으로 좀비는 "나뭇잎이 보이네"라고 말할 수도 있고, '봄이 왔구나'라고 추론을 할 수도 있으며, 나뭇잎을 집으려 손가락을 뻗을 수도 있다.
다만 사람과 달리 좀비는 "초록색"이라는 바로 그 느낌은 가질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물리적, 생리적, 행태적으로 사람과 모두 같지만 바로 그 주관적인 경험만큼만은 불가능한 것이다.
좀비 논증의 옹호자들은 결코 좀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면 현실세계에서 그런게 있다고 볼 이유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다만 관건은 그런 좀비가 존재하는게 가능하냐는 점에 있다.
3. 논증 [편집]
표준적으로 철학적 좀비 논증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제시된다.
전제 (ㄱ): 철학적 좀비는 사유가능하다.
'둥근 사각형'은 말이 안 되며, 아예 사유불가능한 것 같다. 반면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은 존재할리 만무하지만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것 같다. 위에서 정의된 '철학적 좀비'는 '둥근 사각형'이 아닌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보이며, 곧 그와 마찬가지로 사유가능한 것 같다.
전제 (ㄴ): 사유가능하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린 늘상 다양한 방식으로 "만약에..."라고 생각하고는 한다. "만약에 페르디난트 황태자가 총에 맞지 않았더라면..."같은 역사적 가능성, 그리고 "만약에 물리 상수의 값이 달랐더라면..."같은 현실세계의 물리학에선 벗어나는 가능성 등이 그 대표적인 예시다. "만약에 황금 산이 있었더라면..."도 있을법한 가능성이다.
반면에 "만약에 둥근 사각형이 있었더라면..."은 아예 불가능한 것 같다. 왜냐면 애초에 위 사례들과 달리 사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위 사례들처럼 사유가능한 것은 '둥근 사각형'처럼 아예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것과는 구별되며, 곧 어떤 의미에서는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3]
반면에 "만약에 둥근 사각형이 있었더라면..."은 아예 불가능한 것 같다. 왜냐면 애초에 위 사례들과 달리 사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위 사례들처럼 사유가능한 것은 '둥근 사각형'처럼 아예 말도 안되는 불가능한 것과는 구별되며, 곧 어떤 의미에서는 가능한 것임을 시사한다.[3]
소결: 따라서 철학적 좀비는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삼단논법으로 전제(ㄱ) 및 (ㄴ)으로부터 도출된다.
전제 (ㄷ): 물리주의가 옳다면 철학적 좀비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리철학에서 유력한 형태의 물리주의에 따르면 모든 자연 현상은 물리학의 지배를 받는다. 물론 이때 물리학은 현대의 물리학일 필요가 없으며, 아득히 먼 미래의 이상적인 물리학이어도 괜찮다. 많은 철학자들이 동의하는 바는 물리주의가 다음과 같은 함축을 갖는다는 점이다.
- 수반(supervenience) 논제: 만약 두 상황이 물리적으로 완전히 일치한다면, 두 상황은 반드시 심리적으로도 완전히 일치한다.
그 대우는 "두 상황이 심리적으로 다르다면, 물리적으로도 다를 수 밖에 없다"이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물리적 차이 없이 심리적 차이가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좀비가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좀비는 물리적으로 사람과 똑같지만, 현상적 의식 혹은 감각질이라는 심리적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즉 물리적 차이가 없이도 심리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수반 논제를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물리주의가 옳다면 좀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 좀비가 있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좀비는 물리적으로 사람과 똑같지만, 현상적 의식 혹은 감각질이라는 심리적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즉 물리적 차이가 없이도 심리적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수반 논제를 위반하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물리주의가 옳다면 좀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불가능하다.
결론: 따라서 물리주의는 그르다.
소결과 전제 (ㄷ)으로부터 후건 부정에 의해 도출된다.
4. 귀결 및 반론 [편집]
4.1. 결론 "물리주의는 그르다"를 수용 [편집]
4.2. 전제 (ㄱ) "철학적 좀비는 사유가능하다"를 거부 [편집]
4.3. 전제 (ㄴ) "사유가능하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를 거부 [편집]
4.4. 전제 (ㄷ) "물리주의가 옳다면 철학적 좀비가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를 거부 [편집]
[1] "we can imagine that right now I am gazing out the window, experiencing some nice green sensations from seeing the trees outside, having pleasant taste experiences through munching on a chocolate bar, and feeling a dull aching sensation in my right shoulder. What is going on in my zombie twin? He is physically identical to me (…) He will certainly be identical to me functionally: (...) He will be psychologically identical to me (...) He will even be “conscious” in the functional senses (…) he will be awake, able to report the contents of his internal states, able to focus attention in various places, and so on. It is just that none of this functioning will be accompanied by any real conscious experience. There will be no phenomenal feel. There is nothing it is like to be a zombie."[2] 감각질에 관한 고전적 논문인 Thomas Nagel의 "What Is it Like to Be a Bat?"을 염두에 둔 것.[3]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좀비는 설령 물리적(physical) 혹은 법칙적(nomic)으로는 불가능할지라도, 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으로는 가능하다고 좀비 논증 옹호자들은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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